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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에서 낚시를.

나그네 4 3,153
월간붕어에 2004년 9월호 부터 연재하는 글 입니다. nagne2.jpgnagne1.jpg 나그네의 낚시 기행 (奇行) 에피소드1 오아시스에서 낚시를 80년대 초 우리나라 경제가 후진국에서 벗어나려 하는 몸부림을 칠 때 저도 한국에서 보다 수배의 경제적 이득이 생기는 곳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어찌어찌하여 외국행이 결정되고 83년도부터 본거지를 사우디아라비아로 삼아 외국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낮에는 50도짜리 온도계를 햇볕에 내놓으면 금방 꼭지 점까지 수은주가 올라가 버려 온도계가 못 쓰게 되어 버리고 할라스 바람이라는 모래 폭풍이 불면 마스크를 끼고 있어도 입안에 모래가 씹히던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습니다만, 85년 9월 13일 오후 5시 25분의 일 만큼은 간직하고픈 추억이라 글로 남겨 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하면 세계에서 두 번째 큰 네프트 사막이 자리하는 기름만 많이 나는 불모의 땅이라 여기고 길고긴 외국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네프트 사막 남쪽 시작점에 위치한 하일이라는 도시 근교에 위치한 하드코 팜이라는 대규모 농장에 파견 근무를 하면서 놀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풀 한포기 없는 암산 근교에 오아시스가 위치하던 지역을 선정 개간하여 길이 수 십 킬로미터 폭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규모 농장을 만들었다는 것과 밀을 심는 밭에 물을 뿌리는 스프링쿨러 한 개의 길이가 1 킬로미터를 넘는 대규모라는 것, 또한 농업용수를 지하 수 킬로미터씩이나 파서 얻어낸 지하수로 물 부족 없이 농사를 지으며 이 농장에서 생산하는 밀의 양이 태산 더미같이 엄청나다는 것 등 감히 당시의 한국인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일이었습니다. 중략하고 이 농장에는 규모에 맞게 각각의 번호가 붙여진 밭들이 있었는데 농장 중간쯤에 옛날의 오아시스 자리는 저수지 모양으로 조성하여 오아시스 중간에 다이빙대 까지 만들어 근로자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 두었더군요. 당시 이곳 근로자는 미국인들의 지휘아래 필리핀인들이 농부로 일하고 잡일은 인도, 방글라데시, 아프카니스탄 인들이 하고 있는 체제 였으며 이 농장에 수확물 저장 방카시설을 위하여 제가 파견나간 그런 곳이라 하면 되겠군요. 수명의 한국인과 십여 명의 외국 근로자와 함께 이 농장에 파견 온지 삼 일만에 오아시스를 발견하였지만 아무도 이곳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덤벙 물에 뛰어들지는 못하고 며칠을 관망만 하다가 인내의 한계에 달해 덤벙 물로 뛰어들어 수영을 했지요. 제가 뛰어들자 한국인들은 뒤따라 들어옵디다만 타국인들은 쉽게 물에 들지를 못합디다. 아니 그들 대부분은 아예 수영이라는 자체를 터부시 하더군요. 회교도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 해서였다라고 믿고 있습니다. 몇 날을 일과 후 수영이며 다이빙을 하며 놀다가 이상한점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수심이 깊지 않은 곳에서 가만히 서있으니 다리를 툭툭치는 무엇인가가 있더군요. 화들짝 놀라 급히 물가로 나와 뭘까? 곰곰이 생각하는데 오아시스 건너편 잡초 속에 여우가 한 마리 수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 다리를 건드린 것이 물고기 종류고 여우가 저녁시간에 사람이 근처에 있는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오아시스에 나타난 것은 배고픈 여우가 물고기 사냥을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답을 찾았으니 이 답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 했지요. 주변에 있는 직경이 서로 다른 통신용배관을 이용하여 옛날 대나무 낚시대 만들 듯이 대를 만들고 나일론 밧줄의 한 겹을 풀어 낚시줄로 대용하고 옷핀을 바늘처럼 구부려 산소용접기로 달구어 강도를 높여 바늘을 만들고 적당한 나뭇가지를 칼로 깎아 찌 비슷한 것을 만든 다음 식빵을 이용하여 떡밥을 만들어 저수지에서 나를 놀래 킨 녀석들의 정체 확인에 들어갔습니다. 제법 낚시대 모양을 갖춘 이상한 장비를 휘리릭 저수지에 던져 넣고 나니 수분도 되지 않아 찌가 쭉 빨려 들어갑니다. 잽싸게 챔질 하여 꺼내보니 붕어 비슷하지만 붕어는 아닌 애기 손바닥만한 물고기가 달려있었습니다. 그때의 그 감동 ‘아 오아시스에서 낚시를 하고 또 붕어도 잡아 보는구나.’ 그랬습니다. 아직까지도 이름을 모르는 어종인 물고기가 낚시대에 한 마리 두 마리 잡혀 나오기 시작한 것 이었습니다. 그날이후 일과만 끝나면 (사실은 작업 지시만 하고나면이라 해야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 오아시스로 달려와서 낚시하는 재미로 향수를 달래는 날들이 이어졌지요. 하루하루 날이 흐르고 애기손바닥만한 놈들에서부터 어른 손바닥만한 놈들까지 잡히는 것이 하루 수십 마리가 넘자 얼마나 큰놈까지 있는가가 궁금해져서 미끼도 여러 가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바꾸어 가며 낚시를 했었지요. 제가 낚시를 하면 주변에는 인도인, 등등 제 휘하에 있던 직원들과 또 함께 숙식하던 한국인 동료들 심지어 현지 업체인 하드코 팜의 미국인 직원들까지 뒤에서 죽 둘러서 갤러리로 참여하여 이상한 막대기로 물고기를 잡아내는 것을 놀라워할 정도였지요. 드디어 대형 사고가 일어난 85년 9월 13일 오후 5시 25분. 이날도 통닭 가슴살을 잘게 찢어 미끼로 사용하여 낚시를 하던 중 이런 과일도 미끼가 될까하는 장난스러운 생각에 한입 베어 문 사과 한쪽을 잘게 잘라 미끼로 달아 채비를 던지고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수분이 지나자 찌가 쑤욱 솟아올랐습니다. 챔질 후 지금까지와는 다른, 장난이 아니게 몸부림치는 어신이 통신용 파이프로 만든 낚시대를 통하여 손에 정해져 옴을 느끼고 신중하게 끄집어내고 보니 사진에 있는 30,2 Cm 의 대물 이었습니다. 해외에서, 그것도 불모지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사과를 미끼로 잡은 대형 물고기라 이 녀석만큼은 어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숙소로 와서는 어탁을 하기로 마음먹고 재료를 찾던 중 마땅한 재료가 없어 하얀 런링 셔츠 등판을 가위로 오려내고는 제도용 먹물을 고기몸통에 발라 어탁을 했습니다. 이후로는 저는 어떤 기록어 라도 어탁 해본일이 없습니다. 당시 어탁에 증인으로 서명해주신 강담 선배님은 호주에 그냥 계시는지 아니면 계획대로 미국으로 이주 하셨는지 궁금하고, 제가 본사 출장간 사이 8톤 급수차로 운전연습하다 밭둑에 이 탱크만한 차를 넘어뜨렸던 임씨 아저씨, 이북이 고향인 고씨 형님 등등 그 때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던 모든 분들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얼굴들이 눈에 선하군요. “보고 싶습니다. 다들 건강 하시죠?” nagne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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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구름
^-^
나그네
어탁? 런링셔츠에 제도먹물로 그냥한번 찍어 본것인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면소재인 런링셔츠 색만 조금 바래고 이상없네요 제 낚시인생 보물 1호인셈이죠. 붕愛님 관심에 감사드리며 조회수 100 넘으면 계속해서 월간지에 기고했던글들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붕愛
글 솜씨도 좋으시고,  어탁 실력도 대단하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반듯한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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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중 오아시스에서 낚시를. 댓글4 나그네 03-27 21:41 3154
1 이제는 말할수있다 댓글2 붕어세상 03-07 23:27 3083